파리 전위예술가 앨리스 토클라스는 피에르 발메인의 1948년 수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은 언급을 했다. 피에르 발메인이 자신의 컬렉션을 선보였던 지난 9월, 아름다운 장식과 여성의 형과 매력을 강조함으로써 진정한 모드는 무엇이었는지를 새롭게 이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드레스는 더 이상 실용성을 뒷받침하는 장치가 아니며 실크, 울, 레이스, 깃털, 꽃 장식을 통해 우아함과 섬세함을 표현하는 미의 산물로 거듭났다고 평가했다. 비평가들은 종종 아방가르드나 민감하지 않은 것이 진정한 창조가 아니라고 말하지만, 아방가르드는 아니더라도 즉시 장식 패션의 부활에 감사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앨리스 토클라스가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녀의 리뷰에는 전쟁 전후의 과거 시대의 패션이 미모와 거리를 두면서 단지 어떤 추악하고..
그리스 스타일의 드레스를 만든 바이어스 재단의 여왕, 옷을 만드는 건축가, 쿠튀레르의 쿠튀르, 아이솔레이터 드레스의 창조자, 패션의 순수주의자. 마들렌 비오네를 묘사한 수식어가 보여주듯 그녀가 패션사에 남긴 업적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그녀의 디자인 세계를 알면 이들 수식어가 어떻게 소통하는지를 이상하게 드러낸다. 1920년대와 1930년대 여자 복식에서 바이서스 재단에 혁신을 가져온 비오네는 비전과 기술을 겸비한 디자이너였다. 그녀는 11살 때 재봉사로써의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 후 런던에서 활동하며 당시 패션의 중심지인 파리의 최신 스타일을 모방하고 있던 케이트 라일리 밑에서 일했으며, 파리로 돌아온 후에는 당시 최고의 쿠튀르 하우스인 듀세, 칼 세레에서 고급 맞춤 바느질 기술을 연마하면..
1929년 뉴욕의 주가는 폭락했고, 세계는 대공황에 빠졌다. 많은 유럽 국가에서 민족주의가 촉진되었고 실업이 전 세계의 거리로 넘쳐나 대규모 노동운동으로 이어졌다. 미국에서는 공업에 종사하는 여성을 본국으로 돌려보내는 움직임이 있었고, 전통적으로 여성이 전통적이고 우아해야 한다는 시대적 분위기가 팽배했다. 1933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뉴딜정책은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1930년대 후반 대공황에서 회복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은 미국 사람들에게 새로운 생활 양식을 제공하고 오락거리를 증가시켰다. 마를렌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 조안 크로포드 같은 스타들의 화려한 스타일은 평범한 여성들에게 패션 영감을 주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대형 영화가 대중적인 오락거리로 상영됐..